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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이 만드는 초밥 - 신사동 김수사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3>

 

박정희 대통령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를 시험제에서 추첨제로 바꾼 이후 평준화가 대세가 되었습니다.(중학교는 69, 고등학교는 74년부터 평준화가 되었던가요?) 물론 그 이후에도 간간히 시험제를 유지하는 지방 명문고도 있었고, 최근엔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면서 별도의 입학 사정을 하는 곳이 있긴 하지요.

평준화가 좋은지 아니면 입시경쟁을 하는 시험제가 좋은지는 제가 교육학자가 아니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처럼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사다리'가 없어진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시험제가 있을 때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이제는 '현대판 음서제'만 기승을 부리고 있거든요.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치의학전문대학원은 물론이요,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려면 매년 수천만 원의 학비가 들어갑니다. 물론 순수 학비와 교재비만 그러하니 졸업할 때까지 몇 년을 뒷바라지 하려면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졸업만 하면 또 무얼 하겠습니까? 결국 실무를 익히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또 높다란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부모가 의사, 치과의사라면 자신과 관련된 병원에 부탁을 해서 수련을 받게 하고, 결국 자기 병원을 이어받게 하는 것이 통상의 수순이 되었습니다.

 

로스쿨 나온 뒤에 법조계 출신인 아버지의 배경으로 로펌에 취업을 하는 것은 이제 성적 최우수 그룹을 제외하곤 당연한 현상처럼 되었지요.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뒤엔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실을 이어받으면 되는 것이고요. 결국 부의 대물림, 권력의 대물림이 고착화된 것입니다.

기업의 오너들은 대개 사위를 얻을 때 판, 검사를 선호합니다. 의사를 얻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이 모두가 오너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회장님이 아플 때와 비리로 수사를 받을 때를 대비해서 구색을 갖추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 자식은 꼭 경영학과 쪽에 집어넣습니다.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전문 CEO에게 맡기기 보다는, 핏줄인 자식에게 운영권을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신문 부고란을 자세히 읽을 때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처럼 행장(obituary) 코너가 한 사람의 일생과 업적에 대해 잘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고란은 부조금을 받기 위한 코너로 변질된 느낌입니다.) 그러면 몇몇의 경우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인의 직업에 따라 그 자식, 사위, 며느리들의 직업이 유사 직종이거나 아예 같은 경우가 많더군요. 예를 들어 고인이 교장선생님이나 교육장이셨으면 상주들 역시 교육계가 대부분인데, 이는 법조계나 의료계 할 것 없이 공통 현상이더라는 거죠. 작은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 역시 상주들은 그 회사의 임원이거나 하청업체를 맡고 있고요.

 

정치인들이라고 예외겠습니까? 하다못해 전직 대통령들도 정치를 대물림 하려고 그런 시도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이런 모든 행위들을 저는 일종의 증여행위라고 봅니다. 솔직히 아비가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서 부를 쌓고 권위도 생겼으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자식이 한번 가보도록 권유하는 것도 바람직할 터인데, 자신의 직업까지 그대로 이어받게 한다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물론 자식이 아버지를 존경한 나머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부모가 걷던 길을 따른다면야 금상첨화겠지요.

그런데 부모가 일구어 놓은 사업을 이어받는 것이 바람직한 예외가 몇 있습니다. 요식업을 자식이 이어받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겁니다. 물론 무슨 가든이니 , 무슨 갈빗집이니 하는 대형 음식점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일본의 오래된 노포식당처럼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백 년, 이백 년 이상 가려면 우선 자식이 주방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식당 주방을 이어받는 것을 창피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지요. 심지어 다른 사업을 하다가 다 말아먹고는 결국 땅 짚고 헤엄치기인 아버지 일을 물려받는 게 장땡이라는 속셈으로 주방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신사동 네거리에 부자가 같이 일하는 일식집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부터 주방을 이어받을 요량이었는지 아니면 후자의 경우 때문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한 자리에서 40년 이상 뚝심 있게 식당을 운영한 아버지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칭찬받을 일임에 분명합니다. 이 식당의 또 다른 매력은 가격대비 음식이 매우 훌륭하다는 점입니다. (흔히 말하길 이를 가성비가 좋다고 하던가요?)

마치 동경 긴자의 초밥집 스키야바시 지로를 모델로 찍은 영화 지로의 꿈처럼 한국판 김가의 꿈이 떠오릅니다.

 

  신사동 사거리 근처에 있어서 접근이 쉽습니다. 주차도 쉽고요.

테이블 위에 약간 생뚱맞게 있는 안내문인데 자부심이 대단해 보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요리에 대해서는 다들 저보다 잘 아시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복사시미가 나왔네요.

2인분입니다. 다섯이 가니 3인분과 2인분으로 나뉘어 나왔는데 양이 워낙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길 정도로 나옵니다.

 

차조기(시소)를 넣어 만든 밥입니다.

  때 맞춰 송이가 나오는군요.

새우의 머리를 떼어내고 종업원이 입에 넣어줍니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놈을 씹어서 넘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우니, 고노와다, 이쿠라 같은 최고급 재료가 나왔는데...

 

종업원이 오더니 슥슥 비벼 줍니다.

이외에 올리지 못한 음식이 부지기수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