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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적정 가격(Sustainable Price) 3: 흔들리는 업종과 보험수가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47>

 

       팔십 년대 초까지도 빈대라는 놈이 있었는데, 책갈피나 벽 틈에 숨었다가 불을 끄면 우루루 달려들어, 물리면 사흘쯤은 미치게 가려웠다.  보통 살충제는 어림도 없고 “쥐약이나 빈대 잡아요!” 외치고 다니는 행상꾼들이 있었다.  덕분에 빈대가 박멸되자 동시에 이들 꾼들도 사라졌다. 

이들은 맹독성 농약 파라치온을 희석해서 집안 구석구석에 뿌렸는데, 아무리 긴 옷에 마스크로 무장을 해도, 조금씩 스며든 농약이 결국은 목숨을 앗아갔다고 했다.  사실은 때마침 연탄보일러가 보급되자 벽 틈에 살던 빈대가 전멸하고, 따라서 꽤 벌이가 좋던 빈대 잡이 직업도 사라졌다는 해석이 보다 더 그럴듯하다.  이제는 연탄보일러마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사브리나에 나왔던 롤스로이의 최고급 차 팬텀.  일본의 한 졸부가 주문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돈 좀 있다고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것.  세태 변화는 어쩔 수 없어 콧대 높던 이 회사도 외국기업에 넘어간 뒤 달라졌다고 한다.

 제일모직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최고급 양모를 사려고 호주에 갔더니 역시 안 판다는 대답을 들었다.  몇 년 공을 들이니까 그제야 정장 열 벌 분량을 팔고, 정식 바이어로 인정받기까지 10년이 걸렸다던가?  대기업이 국민 체형을 전산화 하고 기성복시장에 뛰어들자, 고급 원단을 공급하던 라사점이 물량전에 밀려 하나 둘 문을 닫고, 이어서 양복점이 어려워진다.  세계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어쩔 수 없어, 이제 인구 156만의 대전광역시에 양복점이 12곳 남았다던가. 

등산복이 국민복이 되고 진짜보다 더 화려한 짝퉁이 흘러넘치자, 애꿎은 세탁소에 불똥이 튄다.  기능성이 뛰어난 등산복은 물세탁에 다림질이 필요 없으니, 일감이 줄어들어 세탁소가 문을 닫는다.  아파트문화가 상륙한지 반세기만에 인구 6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경쟁적으로 붙박이 가구를 설치하니 가구점의 판로가 막힌다.  젊은이들은 골목마다 하나 쯤 있던 목공소가 무슨 일을 하던 곳인지조차 모른다.  국민의 60%가 짓던 농사마저 경지정리·종자개량·영농기계화로 이제 6%의 농촌인구가 거뜬히 해낸다.

 숨 가쁜 경쟁사회에서, 수많은 직종(職種)이 기대(期待)와 사양(斜陽) 사이를 널뛰듯이 오르내리고,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소아인구가 1300만이 넘던 70년대 말, 전문의 혼자 하루에 4백 명을 진료하여, 보험수가만으로 3년 안에 빌딩을 올렸다 한다.  당시 정부는 가족계획에 올 인하여, 숙달된 산부인과의사는 복강경 불임시술을 하루 2백 명까지 소화했다.  보사부에서 나오는 시술비만으로 3년이면 “서울에” 빌딩을 지었다. 산·소아과의 인기폭발로 전문의 배출은 늘었지만, 가임여성 숫자에 한계가 있고 출산율까지 떨어지면서, 처음에는 산부인과, 곧 이어 소아과 환자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제는 소아인구 7백만 시대가 되었다. 

지난 30년간 초고가의 정밀 진단기기가 눈부시게 발전하여, 진단과 거의 동시에 시술하는 심장내과수술처럼 내·외과의 경계가 무너지고, 작게 절개하는 관절경·로봇수술이 속속 개발되어, 개원가의 역할은 미국식 attending system을 거쳐보지도 못한 채 후퇴하고(전문과 포기), 노인 대상의 물리치료·요양병원으로 전환한다.  결국 환자는 대형병원에 쏠리지만, 현 수가로는 병원도 적자를 면치 못하여, “선택 진료와 고가의 건강검진과 진료 외 수입(장례식장 등)”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 각종 규제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직업이던 정책이나 사회변화에 의하여 천국과 지옥을 오가니까, 의료인도 과잉배출·출혈경쟁·신뢰상실 등의 귀책사유로 인한 개인적인 파산이나 직업포기는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업이 국민건강에 필수불가결한 업종인 이상, “기본적인 저평가”로 40년 가까이 누적된 적폐인 “지속불가능한 수가” 만은 국가적인 정책의 대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