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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적정 가격(Sustainable Price) 1: 저가 매장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45>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본 가격파괴현장.  시내에서 $2.50에 산 담배 한 갑이 단 80전이다(1988).  이런 가격이 가능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싼 나라에서 구매하고, 도매상을 건너뛰어 유통마진을 줄이며, 공동구매 회원제 형식으로 세금을 절약하고, 최소한의 계약직 직원만 쓴다.  세계화 초창기에 발 빠르게 출현한 대형마트였다(Price Club). 

몇 년 뒤 디트로이트에서 골프화를 고르는데 같은 상표에 $40와 $120 두 종류가 있다.  싼 것을 골라 비오는 날 신어보니, 완벽한 수륙양용으로 물이 제 집 드나들 듯 한다.  알고 보니 Made in Taiwan, 세계화가 한발 더 진화하여 임금이 싼 “현지공장”에서 만들어 온 것이다.  다시 몇 년 뒤 일본에 100엔 상점이 생겼다.  러닝셔츠·팬티가 무조건 100엔으로 1/3 값인데, 모두가 Made in China. 

 이제는 한국에도 천원상점과 다이소가 성업 중이다.

 

   급하게 안전핀을 샀는데 천원에 40개다.  한 번 더 쓰려니까 바늘 끝이 말리고 휜다.  국산을 찾다가 중앙시장 2층 단추가게 한 구석에 숨만 붙어 있는 B사 제품을 만났다.  값은 중국산의 8배인 5개 천원, 옛날만은 못해도 그럭저럭 쓸 만하다. 

 바지나 스커트가 터진 응급상황에 중국제처럼 조금만 힘을 줘도 그냥 벌어진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다이소에서 파는 대학노트는 플라스틱코일 제본으로 한 권에 천원인데, 단행본처럼 마감한 한국 제품은 문방구에서 4천원이다.  미제 Trim을 이긴 777 손톱깎이는 이제 간 곳이 없고, 질렛트를 몰아낸 도루코 일회용 면도기도 고전 중이다.  삼류 사우나나 모텔 등 대량 소비처에서는 값이 1/5 이하인 중국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인 잡화는, 수건·내복·우산·똑딱단추·고무줄·머리핀·볼펜 등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어와 있다.  그래서 거대한 공장 중국을 가리켜 “세계의 엔진”이라 한다.  한국은 이 공장에 중간재를 납품하며, 식품과 값싼 제품을 공급받는 동시에 중국여행객들의 쇼핑·관광 명소가 됨으로서, 세계를 휩쓰는 “불황의 몸살”을 덜 앓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시나브로 골병이 든다.

 이제는 높은 완성도를 요하는 고부가가치 중국 제품의 수출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위협하고, GNP가 $5천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폭발적인 식료품 수요증가로 국제곡물가격이 올라 식량 수입국인 한국의 국제수지를 위협하며, 위안화의 강세를 앞세워 명품의 본고장을 직접 관광·쇼핑의 타깃으로 삼기 시작했다.  게다가 값싼 제품의 홍수로 인하여, 국내의 기본 잡화 제조회사는 이미 생산기반이 초토화 되어가고, 농수산업도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경제의 불씨를 살리고자 일본 및 선진국이 간 길, 통화 증발·제로금리·소비증가-내수 진작을 우리도 시도하기 시작했다.  맹목적인 싸구려 제품의 양적 소비증가 보다, 질적으로 “충실한 제품(quality product)”에 지속가능한 “적정가격”으로 성장을 유도하는, 낼만큼 내고 좋은 물건을 쓰는, “국산품애용” 캠페인으로 가자.  세월호도 값싼 부품과 수준미달의 인력에 무리한 운행으로 이윤추구만 밝힌 결과가 아닌가? 

 이런 관행이 길어질수록 생산기반이 고사(枯死)하여 사정은 더 악화된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세계 첨단으로, 오바마가 부러워하고 중동·아프리카에서 배우러 온다.

 그러나 그 성공은 국가의 투자가 아니라, “전공의의 노예노동”과 대기업 근로자 연봉보다 낮은 “개원가의 저소득”이라는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정책당국자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많은 전문과의 전공의 지원자가 모집정원의 절반수준이라는 현실은 적신호(赤信號)에 다름 아니다.  지속 불가능한 의료수가로 의료서비스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싼 것만 찾으면 GNP 3만 불은 물 건너가고 추락만 남는다.

 


 

 

 

 

 

 글: 임철중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회장

대전`충남 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창설 및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수상

대한치과교정학회 부회장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창립 및 회장

대전방송 TJB 시청자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