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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순대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백암순대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2>

 

제 나이 언저리에는 유명한 '여류작가'(어떤 분들은 아예 여류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합디다만)들이 꽤 있습니다. 은희경, 신경숙, 최영미, 공지영, 하성란...

 

그러나 제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박경리 작가와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신 이후의 여류작가계는 뭔가 허전합니다. 이 말은 서사적이거나 질곡 같은 우리네 삶이 녹아든 그런 작품들을 내기엔 현존의 작가들이 조금은 '약해' 보인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약게'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더하여, 순전히 제 개인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작품이 조금 부담스러운 작가도 있습니다. 제게는 작품성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나 능력도 없지만, 소설가 K씨와 시인 C씨의 작품은 읽고 나면 약간의 불편감이 생깁니다. 그 불편감이란 것이 솔직히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저의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까닭은 동아일보 김화성 기자가 쓴 '순대이야기'의 서두에 C의 시가 실려서인데, 시를 읽어보면 순대라는 음식이 돼지국밥과 더불어 사내들 혹은 수컷들의 상징적 음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라는 건

                         C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평소 C의 시나 수필을 읽노라면, 굶주린 수컷들은 물론이고 결혼을 하려고 안달을 하는 암컷들에 대한 노골적 적개심이 묻어 있는 글을 자주 봅니다. 아마 시인은 이런 경고를 통하여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이나 암시를 거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독자로 하여금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김기자의 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3대 순대천왕이 있는데, 백암순대와 병천순대 그리고 속초 청호동 함경도 아바이순대가 그것이랍니다. 병천순대는 바로 충남 목천의 아우내 장터 순대를 말합니다. 유관순 누나가 3.1 만세 운동을 했던 바로 그곳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관순 누나가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승복 어린이도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유관순 누나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없어진다는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원래 순대의 기원이 개의 창자를 이용한 것이고 보면, 식용 가능한 동물의 내장에 속을 채워 넣은 음식을 통칭해 순대라 부르면 될 것입니다. (독일의 소시지도 다 순대의 일종이랄 수 있지요.)

 

그런데 각 지역의 순대 구별은 작은 창자를 쓰느냐 혹은 큰 창자를 쓰느냐, 동물의 피를 많이 넣느냐 적게 넣느냐, 머리뼈 같은 것은 얼추 갈아 넣느냐 아니면 완전 갈아서 넣느냐에 따라서, 또 당면, 찹쌀, 숙주, 양배추, , 마늘 등 속 내용물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워낙 제 각각인지라 그날 그 식당을 찾은 숙명이겠거니 하고 먹으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서는 예전처럼 동물의 내장을 이용한 순대를 좋아하고, 젊은이들은 식용 비닐 같은 재료로 만든 검은 색의 가짜순대에 열광한다는 점입니다. 평소 분식점 같은 곳에서 먹던 순대맛과 용인 백암면 현지에서 먹어 보는 순대맛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데 말입니다.

 

백암순대는 머리고기를 대충 갈아서 넣습니다. 씹는 맛은 제법 있지만 재수 없는 경우엔 치아가 부러질 수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식당 안에 '이빨 조심'이라는 강력한 경고문이 붙어있더군요. (치과의사 입장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순대껍질은 작은 창자를 쓰고 선지를 아주 약간만 넣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흰색을 띱니다.

 

순대는 원래 뜨거울 때 먹어야 육즙도 넉넉하고 맛이 있는데, 남은 순대를 포장해서 갖고 와 다시 레인지에 데워 먹으니 상당히 질기고 퍽퍽하더군요.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순대 특유의 피냄새가 떠오르며 허기가 밀려오네요. 병원 인근의 순대집에서 싸구려 순대로 제 순대부터 채워야겠습니다.

 

 

백암에는 순대식당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도 중앙식당과 제일식당을 최고로 쳐줍니다.

      일반 순대와 모듬순대의 가격차이가 좀 있습니다. 순대에 머릿고기, 오소리감투, 허파 등등이 조금씩 더 들어 있는 것이 모듬이죠. 오소리감투는 돼지의 위장을 말하는데, 일명 '귀때기'라고도 합니다.

 

 

시골 식당치고는 제법 깔끔합니다. 쥔어른 뿐 아니라 종업원들도 다 친절하고요.

 

  

설렁탕 같은 뽀얀 국물이 맘에 듭니다만 약간 짠맛입니다.

 

  

   백암순대입니다.

  

 

순대와 머리고기만 있는 것은 그냥 보통 백암순대이고요, 머리고기, 오소리감투, 허파 등등이 추가된 것이 모듬순대입니다.

  

 

내용물이 훤히 보이네요. 당면이 중국당면처럼 제법 굵습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