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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비빔밥과 누룽지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40>

 

한민족에겐 기본적으로 비빔 본능이 있습니다. 아무리 상 위에 산해진미가 한가득 차려 나오더라도 종국엔 비벼 먹어야 직성이 풀리니 말입니다.

유교문화가 발달한 안동이나 진주 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헛제사밥의 경우에도 밥에 각종 나물을 올리고 그리고 탕국물을 조금 떠 넣은 뒤 비벼 먹는 방식이니 비빔의 역사는 유교의 역사와 함께 꽤 깊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 비벼먹는 걸 좋아할까요?

혹자들은 외국의 식사 방식은 메뉴가 순서대로 나오는 시간전개형이지만, 우리는 상 위에 한꺼번에 차려 나오는 공간전개형이어서 여러 반찬을 입에 집어넣고 구강 내에서 비비고 섞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맛을 찾는 것이라며 미화를 하지만,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일본 사람들에겐 우리의 비빔밥에 해당하는 덮밥이 상당히 다양하게 있는데, 그네들은 밥과 밥 위의 올린 건더기를 절대로 섞어 먹는 법이 없습니다. 젓가락으로 밥 따로 반찬 따로 즐기는 것이 돈부리(덮밥) 음식의 핵심이지요. 그네들은 음식을 섞음으로 해서 본래의 맛을 훼손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 하지만, 우리는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런 성향을 고려하면 과거 우리나라를 지칭했던 '은둔의 나라'가 오히려 잘못된 표현이며 반대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나라는 아닐런지요?

 

우리가 음식을 비벼먹게 된 이유를 곰곰 따져보면, 아무래도 일을 더 하기 위해 식사시간을 줄이려는 목적, 가족 수에 따른 그릇(용기)의 부족 그리고 다양한 음식 재료의 부족 등에 따른 나름의 대처방식을 찾다가 나온 부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 뉴욕, 런던 그리고 동경에서도 'Bibim'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예 간판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는데, 어느 곳이든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에 맞는 퓨전 스타일의 각종 비빔밥 메뉴를 선보인다고 하네요. 게다가 미국 영부인인 미셀 여사가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보도까지 있었으니 그녀가 비빔밥도 곧 시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비빔밥의 고장인 전주에서 '돌솥 비빔밥'이 일반적인 비빔밥 스타일보다 더 유행인가 봅니다. 돌솥 방식은 일본에서 건너온 스타일인데,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가 뜨겁게 달구어진 돌솥 때문에 만들어지는 누룽지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 외국인들은 쫀득한 식감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치아에 들러붙는 끈적이는 식감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쫀득함의 대명사인 떡볶이를 세계화하겠다는 구상은 기본적으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 정책이 아닐 수 없지요(항간엔 '떡볶이 연구소' 차리는데 200억을 썼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떡볶이의 쫀득함과 누룽지의 바삭함은 외국인들의 선호도가 극과 극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바삭함을 좋아하는데, 이태리 피자의 핵심도 구워낸 도우의 바삭함이지 치즈의 쫀득함이 아닙니다.

하지만 누룽지 백숙이나 누룽지탕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바짝 말린 누룽지를 다시 물이나 소스에 불려서 만들면 숭늉 속의 누룽지처럼 물컹거리게 마련이지요.

 

지중해 연안 특히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르세이유 그리고 니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진 음식인 '빠에야'는 우리의 돌솥 비빔밥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빠에야에 넣는 샤프란의 향과 색이 좋다고 한들, 밥도 설익었고 전체적인 맛도 해물의 비릿함 때문에 그저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닥에 눌러 붙은 누룽지만큼은 최고의 맛입니다. 이 누룽지를 일명 '소카라다' 혹은 '소까라다'라고 부르는데, 정작 본 음식보다도 소카라다가 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에게 인기라고 하니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딱딱하고 바삭한 맛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결코 뒤질 수 없지요. 요즘은 삼겹살을 먹어도 야채 다진 것과 양념을 추가하여 밥을 볶아서 먹고, 해물탕을 먹어도 종국에는 볶고.... 그 어떤 것을 먹어도 마지막 식사로 비빔볶음밥을 해먹습니다. 그러니까 구멍이 숭숭 뚫린 석쇠구이만 아니라면 끝판에는 무조건 볶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비빈다' 혹은 '섞는다'라는 말은 홀로 뛰어나거나 남보다 우월한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일본처럼 ’()를 깨뜨리는 행위를 우리 역시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남보다 부자가 되는 것, 남보다 출세하는 것, 남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 등은 예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은 우리 민족의 기질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이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죄다 섞어서 비비고 볶는 것이겠지요.

! 승진이나 아첨하기 위해 손바닥을 비비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고요!!

 

수원 신사강식당의 볶음밥! 삼겹살 불판 위에 그대로 볶습니다.

 

안양 정호식당의 볶음밥입니다.

안양 정호식당은 해물탕에 관해서는 전국 최고이지만, 서빙 할머니들의 연세도 아마 동급 최강에 가깝습니다. 의정부 오뎅식당 할머니들, 야생 동물 요리의 대명사인 용인 금촌집 할머니들과 더불어 70대 할머니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식당이지요. 아차! 수원 남보원의 주인 할머니와 보조 할머니도 무시할 수 없네요.

 

대도식당의 볶음밥 소스를 가열하는 모습입니다. 일단 자작하게 만든 뒤에 밥을 투하하지요. 남은 고기를 잘게 설어 넣어주는 센스는 기본입니다.

 

   수원 입주집에서 양곱창을 먹고는 또 볶습니다.

 

   지리산 흑돼지 돌판구이를 먹고도 볶아야 합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