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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가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노래하는 치과의사들: 자이리톨밴드<2>

상상마당에서 열린 지난해 9월의 자이리톨밴드 정기콘서트에는 250여명의 관중이 자리를 메웠다. 관중이래야 치과의사 지인들이 대부분이지만, 불려나온 듯 꼿꼿하던 이들의 앉음새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허물어졌다. 그리곤 막바지엔 가왕 조용필에 열광하는 아저씨 팬들처럼 손가락 휘파람을 불며 반복해 앵콜을 외쳐댔다.

일상에선 마주치기 어려운 뜨거운 무언가를 이 공연에서 만난 탓이다. 그 뜨거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무모하리만큼 단단한 이들의 열정과 마주치게 된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월요일이면 각자 악기를 챙겨 들고 홍대 앞 연습실로 모여드는, 그 본능 같은 습성 말씀이다.

어쩌면 이들은 한 번의 공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삶 자체를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멤버들은 그 오랜 반복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함께 얘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음을 조합하는 일련의 시간들을 극히 자연스런 경지로 끌어올렸다.

 

 

하고 싶은 것, 하지만 할 수 없는 것

 

-혹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거나 삐치거나 하는 일은 없나요? 아무리 남자끼리지만 오랜 시간을 같이 하다보면...

“(웃음).. 그럴 일들이 없을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이젠 각자가 방법들을 대충 짐작을 해요. 이쯤에서 내가 물러서는 게 좋겠다든지.., 누구랄 것 없이 많이들 양보를 하는 편이죠. 그래서 이제껏 특별히 문제가 된 적은 없었어요.. 그렇지 않나?”

대답을 마친 이승택 원장이 멤버들의 동의를 구했지만, 옆의 기 원장과 신 원장은 실실 웃기만 했다. 

-음악적 취향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비슷하니까 한 팀이 된 것 아닌가요?

“처음에야 취향 같은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어요. 자선공연을 위해 알음알이로 팀을 짰고, 오히려 그걸 지속하다 보니 나름의 스타일이 생겼다고 봐야겠죠, 사실 아마추어 밴드들이야 듣는 쪽 위주로 연주를 해야 하니까 내 스타일이란 것이 있을 게 없잖아요? 하다 보면 듣기에도 연주하기에도 편한 장르가 생기고, 그러면 그게 밴드의 스타일이 되는 거죠. 우린 락 발라드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지난번 공연 때 보니까 멤버들이 모두 레퍼토리를 한곡씩 갖고 있더군요. 보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건가요?

“하하.. 그렇지 않아요. 우리 팀의 보컬은 신 원장 한사람이죠. 우린 러닝타임이 길 경우 신 원장이 힘들지 않게 중간 중간 도와주는 역할만 해요. 에이~ 우리가 자꾸 나서면 관중들이 싫어하죠.” 

이번엔 기세호 원장이 나서서 신용준 원장을 추켜세웠다. 하지만 팀에 꼭 보컬이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보컬을 잘만 활용하면 팀 컬러가 훨씬 다양해질 수 있으므로... 다만 이 경우엔 청중들을 혼란스럽게 할 위험성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백 코러스를 고정으로 두는 건 어때요. 지난 상상마당 공연이 특별해 보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무래도 백 코러스의 존재감 같은데요? 왜냐하면 그날은 음악이 다른 때보다 훨씬 풍성하고 맛깔나게 들렸거든요.^^

“하하.. 바로 그게 우리 고민이기도 해요. 백 코러스가 있으면 보컬이 산다는 걸 누가 모르겠어요.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문제는 돈이죠. 전문 프로팀을 불러야 하는데, 연습기간 동안의 인건비에 비용까지 치면 적지 않은 지출이거든요. 수입이 없는 우리 같은 아마추어 밴드에겐 호사에 가깝다고 봐야죠.^^”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주변에도 많이 있을 법 한데요. 아마추어 팀을 단원으로 모집하면 안 될까요? 여자 치과의사나 치과위생사들로..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백 코러스도 하나의 전문분야이고, 같은 팀으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선 오랜 기간 함께 연습도 해야 하는데, 그게 쉽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공연이 잦은 것도 아니고...”

-딴은 그렇기도 하군요.^^ 그러면 자이리톨에 지금 꼭 필요한 건 무엇이죠? 혹 멤버들끼리 그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나요?

“하하.. 멤버끼리 않으면 누구랑 그런 얘길 하겠어요. 필요한 게 있긴 해요. 그건 잘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곡을 갖고 싶다는 겁니다. 자이리톨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카피 밴드잖아요. 더 늦기 전에 우리 음악을 한번 해보고 싶은 거죠.”

-좋긴 한데, 그거야 말로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곡도 받아야 하고, 녹음도 해야 하고, 뮤비도 찍어야 하고...

“하하.. 그건 걱정 마세요. 우린 돈 안들이고 할 자신 있어요. 신 원장 부인이 시나리오 작가시거든요. 기 원장 둘째는 작곡을 전공하고 있고요. 두 분께 부탁하면 아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녹음실이야 잠시 빌리면 되고, 뮤비도 꼭 찍어야 한다면 아마 도와주실 분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정도로 술술 나오는 걸 보면 아마 곡을 만드는 문제를 많이들 생각했었나보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이리톨 정도의 연륜이라면 남의 노래를 연습만으로 따라 부르는 일이 이젠 좀 어색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주앉은 친숙한 관중들에게 한번쯤은 우리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더구나 이들의 연주 실력은 이미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상에 와 있다. 

-스스로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악활동이 각자의 개원에는 좀 도움이 되나요? 바깥에서 볼 땐, 글쎄요? 도움이 되는 부분도, 손해를 보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도움이라기보다 활력이 되는 거죠. 집에서도 치과에서도 조금 더 적극적이에요, 음악을 하기 전보다... 주위의 시선도 참 재미있어요. 밴드활동을 하는 치과의사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너그러워져요. 그러면 덩달아 이쪽도 너그러워지고, 웬만해선 부딪칠 일이 없어지는 거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밴드를 안 하면 생활 자체가 굉장히 무료해질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린 자이리톨을 철저히 누리는 중이라고 봐야죠.^^” 

 

 

나와 주변이 함께 건강해지는 방법

 

‘언제까지 활동할거냐’는 질문에 멤버들은 롤링스톤스가 그렇듯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택 원장(키보드)도, 기세호 원장(베이스)도, 신용준 원장(보컬)도, 나현우 원장(기타)도 김영준 사장(드럼)도 그러고 보면 표정들이 유난히 밝다. 물론 별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즐겨 부르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에서 처럼, 이들은 마치 세상에다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보인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이번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