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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일식 유감 (日食 遺憾)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37>

 

대체로 일식은 고급 음식으로 칩니다.

古來로 일식은 혀로 보고 눈으로 먹는 음식이라 했으니, 혀에 감기는 고급스러운 맛과 단순 절제미가 돋보이는 데커레이션(꾸밈)이 생명이겠지요.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일식이 현해탄을 건너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상당히 변질되었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부담스러운 일식집 간판보다는 'OO 횟집'이라는 차라리 우리식 이름의 식당이 더 정감이 갈 정도입니다. 그러나 회(사시미)를 먹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과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새롭게 만든 퓨전 스타일이라고 일식집에서 항변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요.

대체로 우리나라의 일식집들은 대중적이거나 고급이거나 할 것 없이 천편일률적입니다. 심지어 간판은 분명 '스시'집인데 저녁에 가이세키 혹은 회정식을 주문하지 않고, 초밥을 시켰다간 욕만 실컷 먹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은 초밥을 전문으로 내는 식당들이 제법 생겨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긴 합니다만.

게다가 맛은 둘째 치고, 일본의 정통 가이세키 코스대로라도 나오면 그나마 봐주겠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일식 코스는 '츠께다시'에 목숨을 거는 형국입니다 (가이세키는 會席料理懷石料理 두 가지인데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우리나라 일식집에 들어가면 대략 이렇게 상황이 전개되지요.

'노랜'을 걷고 미닫이문을(요즘은 다 자동문) 열고 들어가면, 스시다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이랏샤이마세~~!"를 합창합니다. 홀은 좁고, 홀 안의 테이블은 구색만 갖추었을 뿐, 그곳에 앉아서 식사를 할 분위기는 전혀 아닙니다. 스시 카운터에도 주인장이나 마담 이외에는 앉아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당연히 없습니다.

일단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마담에 이끌려 교도소 독방 같은 룸으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좀 근사한 곳이라면 다다미방에 다리를 상 밑으로 내릴 수 있게 만든 방이고 아니면 허리를 댈 수 있는 좌식 의자가 있는 방이 대부분입니다.

소독 여부를 알 수 없는 '시보리'(물수건)가 나오면 손을 닦다가 급기야 목과 얼굴까지 닦습니다. 결국 식당이나 손님이나 수준은 매 한가지입니다.

우선 전복인지 소라인지 아니면 그냥 조개인지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죽이 먼저 서빙 됩니다. 이제 술을 주문할 차례입니다. 하지만 명색이 일식집인데 일본 사케라고는 '월계관'만 달랑 있는 집도 많더군요.

손님들도 대다수 소주와 폭탄제조용 맥주를 주문합니다만, 맥주 값이 가관입니다. 맥주 중에도 제일 작은 병만 취급하는데 가격은 일반 식당의 서너 곱은 기본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맥주로 '간조'를 올린다는 혐의가 농후합니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엄청난 츠께다시 1차 공습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죄다 짜거나 기름 범벅들이고, 통조림 옥수수는 왜 꼭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급한 덤찬들로 허기를 채우고 나면 그제야 메인 요리인 '사시미'가 나옵니다.

 

하지만 손님들끼리 먹고 마시면 실례입니다. 서빙 하는 '언니'들에게 '소폭'을 만들어 주면서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를 컵에 말고, 라이터로 컵 밑바닥에 불을 붙이는 시늉까지 합니다. 그러면 팁이 '천만불'이 되니까요. 특정 룸 손님들의 팁이 후하다는 무전이 돌면, 종업원들은 주방에서 싸구려 안주 하나씩 들고 오면서 술을 달라고 강요합니다. 물론 '러브샷'이지요.

회 접시 위의 와사비도 대개 튜브 와사비(고추냉이)입니다. 상어 턱밑 가죽으로 만든 강판에 바로 갈아서 나오는 고추냉이는 최고급 일식집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손님들도 간장에 와사비를 넣어 휘젓고, 심지어 레몬을 모두가 먹는 회접시 위에 짜서 뿌립니다. 이 정도면 식당이나 손님이나 다 도긴개긴입니다.

 

메인요리를 어느 정도 먹으면 부장이나 실장이라는 직함을 단 친구가 덤 사시미나 특수부위를 들고 와서 아부를 합니다. 그러면 호기 있는 친구가 소주 한 잔 주면서 2~3만원을 쥐어 주는데, 그러면 실장은 주방에다 대고 소리를 칩니다. "몇 호실에 뭐 좀 더 만들어 올려라~~!!" 사실 이것도 일종의 뒷거래이겠지요.

북한이나 아프리카엔 굶어 죽는 사람도 많다는데, 일식집의 음식은 반 이상 남길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마지막 '피니쉬 블로우'는 돌솥알밥이나 김마끼 혹은 우동입니다. 이 정도면 과음이 아니라 과식이 더 큰 문제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모임이 끝나면, 나가는 현관까지 실장, 마담 그리고 종업원들이 도열합니다. 이 정도 대접을 받으면 취한 김에 왕이 된 기분까지 되지만, 집에 와서는 얇아진 지갑이나 카드 영수증을 보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상이 일상에서 겪는 대충의 일식집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즈니스 접대나 로비를 할 때 일식집을 선호할까요?

아마도 독립된 방이 있어서일 테고, 그 방안에서 은밀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전 과천의 고위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P호텔 일식집이 그러한데, 그 곳은 어느 방에 누가 왔는지 자체가 극비입니다. 아마도 서로 알아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겠지요.

조용필 노래였지만, 박정현이 불러 더 히트를 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라는 노래가 떠오르네요.

'이젠 일식 좀 바뀌었으면 좋겠네!'라고 말입니다.

 

이상의 사진은 역삼동 와인샵 세브도르 2층에 위치한 일식집 '스미즈'입니다.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