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개원가

교묘한 광고기사들 '이건 광고를 한 것도, 안한 것도 아냐..'

유력 일간지까지 버젓이 '기사 끼워팔기' 나서

‘이 없으면 임플란트’..이제 하루 만에 심는다.

국내 최대 부수 일간지가 ‘올여름 건강’이라는 타이틀의 섹션면 표지에 올린 기사 제목이다. ‘치과 임플란트에 관한 정보이겠거니’ 하고 자세히 보면 영락없는 치과광고다.

임플란트 술식을 소개하고 있긴 한데 치과명이 맨 앞에 버젓이 들어가 있고, 이 치과에서 치료받았다는 환자의 후기, 이 치과만의 특화된 수술방법 그리고 여러 케이스의 환자들을 안심시키는 술자들의 전문가적 조언이 실명으로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대로라면 즉시식립 임플란트라는 술식 자체가 이 치과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빡빡한 업무 때문에 수개월이 걸리는 임플란트 수술을 미루기만 하다가 지인으로부터 발치 후 하루 만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이 치과를 찾았다’는 한 환자는 ‘6개의 치아를 뽑고 즉시기능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당일 진밥이지만 저녁식사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나 기사 어디에도 이 술식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이미 많은 치과들에 의해 시행되는 수술방법이란 설명은 없다.

기사는 ‘즉시기능 임플란트 수술은 사실 수년전에 등장했지만 당시에는 잇몸을 절개하기 전에 잇몸 뼈의 단단한 정도와 염증을 미리 발견하기 어려워 수술이 잘못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소개하면서도, 이 치과에서라면 ‘3차원 CT로 환자의 잇몸 뼈 밀도, 염증 여부, 신경관 위치 등을 정밀하게 살핀 뒤 컴퓨터로 가상 수술을 반복한 후 가장 좋은 결과가 기대되는 수술방법을 선택하고, 3D 프린터로 가이드를 만들어 수술의 정확성을 높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며 강점을 부각시켰다. 

 

 

법망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여러 개의 임플란트가 필요한 환자들이라면 기사 내용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친김에 서둘러 이 대단한 치과에 연락할 방법을 찾게 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료법 제56조는 ‘신문, 방송, 잡지 등을 이용하여 기사 또는 전문가의 의견 형태로 표현되는 광고’를 엄연히 금지하고 있다. 해당 조항의 시행령은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 의료기관 · 의료인의 기능 또는 진료 방법에 관한 기사나 전문가의 의견을 신문 · 인터넷신문 또는 다른 정기간행물이나 방송에 싣거나 방송하면서 특정 의료기관 · 의료인의 연락처 및 약도를 함께 싣거나 방송하여 광고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의료정보 기사라면 상업성이 덜한 대학병원이나 교수들을 내세워 필요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특정 의료기관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성 기사라는 독자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예로 든 즉시기능 임플란트 기사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특정 의료기관과 소속 의료인들 위주로 술식을 설명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연락처나 약도를 기사에 넣지 않았으니 의료법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이다.

왜냐하면 바로 뒷면에 이 치과의 광고가 ‘대한치과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필’을 붙인 채 대문짝만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광고에는 그림으로 설명하는 임플란트 시술 단계는 물론 의료진의 사진과 병원약도 및 전화번호가 큼지막하게 들어 있다.

결론은 뻔하다. ‘홍보기사를 써주면 광고를 내겠다’고 했던지, ‘광고를 내 주면 홍보기사를 써주겠다’고 했던지 둘 중의 하나이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이 기사가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돈을 내고 광고를 기사처럼 하고 싶다면 광고기사라고 당당히 밝히면 된다. 그러면 독자들은 방금 읽은 정보가 광고라는 점을 감안해서 거기에 맞게 신뢰도를 매긴다. 이게 훨씬 정당하다.

 

 

'중요한 건 누군가를 속일 의도' 유무

 

홍보에 목마른 의료기관들을 현혹하는 매체들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신문에서 잡지에서 흔해 빠진 게 이런 류의 광고성기사들이다. 그럴듯하게 특집이니 기획이니 면을 잡아두고 광고대행사를 통해 물주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광고를 댓가로 쓰는 기사가 오죽이나 할까. 정보의 시의성이나 신뢰성 보다는 광고주의 요구가 우선할 것이 틀림이 없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상까지 판다. 후원기관으로 보건복지부까지 끌어들여 공익성을 포장한 다음 돈을 받고 상을 나눠주는 식이다. 더 한심한 건, 언론사들의 이런 돈벌이 장난에 굴지의 병원들까지 놀아나는 현실이다. 양쪽 모두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독자나 환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법이 허용한 의료광고 자체가 문제일 리는 없다.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광고를 통해 환자들에게 내가 가진 강점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이 누구를 속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설사 이런 행태들이 광고대행사의 장난이라 쳐도 결국 책임은 거기에 이름을 내민 병원 측이 질 수 밖에 없다.

어느 분야든 이젠 좀 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 사회의 숙제가 양(量)이었다면 이제는 질(質)이 우선인 세상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위에 예로 든 광고인지 기사인지 모를 속임수가 기대한 효과를 얻기는 점점 어려워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