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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무·정책

28기 戰友들..'누가 남고 누가 떠나나'

집행부 24명 중 절반이상 29代로 수평이동

김세영 협회장이 지난 4월 30일 드라마틱한 3년의 임기를 마감했다. 그는 성격답게 이틀 미리 협회장실을 비웠고, 마지막 시간을 작별을 위해 사용했다.

29일엔 기자들과 저녁을 같이 했다. 이 자리에서 김 협회장은 두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는 선거과정에서 나돈 온갖 마타도어들에 대한 일하는 입장에서의 섭섭함이었고, 둘째는 28대에서 함께 일한 임원 및 시도지부장들과 모임을 만들어 퇴임후에도 치과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구상이었다.

이 두 가지는 별도의 내용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맥락의 얘기일 수도 있다. ‘집행부를 근거 없는 비방으로 곤란하게 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이 모임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성 발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세영 협회장은 지난 임기동안 과거 어느 협회장도 경험하지 못한 긴박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야전군사령관처럼 협회장실을 지켰고, 작전참모를 대하듯 측근들을 대했다. 그는 자신이 진두지휘한 UD와의 전쟁에서 때론 역공을 당하기도, 유탄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또 연합군의 도움으로 함포사격을 퍼붓기도 했고, 쫓기는 적을 추격해 다수의 화기를 노획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를 끝낸 지금 김 협회장에게 남은 건 여기저기 아물다 만 상처들뿐이다. 야전에서의 3년을 보내고 이제 그는 김세영 개인에게 걸린 10여건의 소송을 훈장처럼 가슴에 매단 채 지휘봉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과거 이런 회장은 없었다. 1996년 이전의 회장들은 주로 內治의 역할에 머물렀다. 예산을 탈 없이 굴려 사무처와 시도지부들을 제대로 관장하는 것이 임무의 전부였다.

내치보다 외치가 중요하다는 걸 처음 보여준 사람은 이기택 회장이었다. 그는 내부 일은 부회장이나 총무이사에게 맡기고, 국회와 보건복지부와 그리고 의료계 단체장들을 주로 만나 필요한 것들을 얻어냈다. 정재규 회장을 거쳐 안성모 회장 땐 치정회 파동으로 잠깐 주춤하기도 했지만, 이수구 회장 또한 외향적인 회무기조를 확대시킨 인물로 꼽힌다.

 

 

김세영 회장의 완벽한 출구전략

 

김세영 협회장은 아예 공약부터가 전쟁이었다. 영세 개원가를 자본으로 유린한 기업형 네트워크를 잡는 것이 그가 회장이 된 유일한 이유이자 사명이었다.

그의 전쟁은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적들은 생각보다 끈질겼고, 전쟁이 길어지자 내부의 피로도도 급격히 높아졌다. 공방의 와중에 치과계 전체가 포화에 휩싸이면서 전쟁을 빨리 끝내라는 압박까지 거세졌지만, 그는 결국 뚜렷한 결실을 얻기도 전에 물러나야 할 시간을 맞고 말았다.

김 협회장의 입장에선 기왕 시작한 전쟁을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재출마를 떠올렸고, 한 때 그의 그런 생각은 ‘유디와 싸울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강박으로 자라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홀연 재출마 의지를 접고, 최남섭 부회장을 단일 후보로 옹립했을 때 사람들은 ‘왜 갑자기 김 협회장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매우 의아해했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난 내가 꼭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단지 같은 회무기조를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대안이 없으면 나라도 나서야겠지만, 최 부회장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내가 굳이 재선을 고집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선배 세 분을 부회장으로 모시고 3년을 일했는데, 그 분들을 또 주저앉히면.., 그 집행부가 온전하겠어요? 그건 이겨봐야 상처뿐인 영광인거지.”

그의 선택은 옳았다. 집행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최남섭 후보는 시종 판도를 리드하더니 큰 표 차 승리로 대미를 장식했다. 여기서 ‘전폭적인 지원’이란 집행부의 어느 누구도 적어도 상대 진영을 기웃거리진 않았다는 의미이다.

 

3년 전만 해도 당시 이수구 집행부는 선거 몇 달 전부터 김세영 라인과 이원균 라인 그리고 안창영 라인으로 뚜렷이 갈라졌다. 때문에 레임덕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막바지엔 거의 정상적인 회무가 어려울 정도로 계파간 견제가 치열했다.

여기에 비하면 김세영 집행부는 선거를 열흘 앞둔 정기이사회에서 ‘선거 후에 있을 임기 내 마지막 외부행사에 임원들이 많이 참석하도록 독려’할 정도로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28대에 대해 누가 어떤 평가를 내리든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이런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마치 좁은 유리관을 통과하듯 옮겨온 28대 덕분에 29대엔 사람이 넘친다. 이런 상황은 최남섭 신임 협회장에겐 축복인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실제 이번 조각이 난산이 될 걸로 예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로 ‘주위에 인재가 너무 많다’는 점을 든다,

29대 첫 정기이사회가 20일로 예정돼 있으므로 아직 일주일 정도는 여유가 있지만, 지난 연휴기간 동안 최 협회장이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여기에는 신구의 조화, 대학간 안배, 당선 공헌도, 참신한 인재 발굴 같은 여러 가지 변수들이 상호작용해 결국 개개인의 선택을 가로막기도 한다.

그 퍼즐 같은 그림조각을 맞추기 위해 먼저 28대 임원들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를... 미리 말씀드릴 건 확정되지 않은 모든 사항은 현재로선 추측일 뿐이란 점이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길 특별히 당부 드린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고

 

김세영 협회장은 훌훌 떨치고 떠난다. 그 자신 홀가분하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의 출구전략은 나름 성공적이다. 환자도 보고, 서울의료봉사재단 이사장으로도 활동하면서 대의가 보다 분명한 다른 길이 열리면 마다하진 않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영섭 부회장과 안민호 총무는 최 협회장을 도와 선출직 부회장이 됐다. 우종윤 부회장은 감사로 선출됐고, 홍순호 부회장도 29대에서 주요 보직을 맡게 되리란 추측이다. 그리고 보험담당 마경화 부회장을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성우 치무이사, 이강운 법제이사, 김철환 학술이사, 김홍석 공보이사도 29대에 남을 확률이 높다. 이들이 새 집행부에서도 같은 일을 맡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추천이사 명단에 든 것만은 사실이다.

선대본부장으로 활약했던 김종훈 자재이사는 임명직 부회장에 내정된 상태이고, 송민호 군무이사, 박경희 보험이사, 최치원 대외협력이사, 김철신 정책이사도 한 번 더 회무를 맡게 될지 모른다. 이들 역시 자리를 확정하진 않았지만, 신임 협회장에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따지면 협회장이 임명권을 갖는 임명직 부회장 2석과 이사 19석 중 9명이 28대에서 옮겨오는 셈이 되므로 나머지 11석이 외부에서 영입할 새 인물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궁금하더라고 발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칫 미리 아는 체를 했다간 인사권자에게 공연한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협 28기 전우들은 이렇게 각자 사정에 따라 떠나기도, 남기도 할 것이다. 이들이 치른 UD와의 전쟁 또한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이들은 오랫동안 당시를 회고할 것이다. 역사란 결국 치열하게 행동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